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오도시우스 1세 (문단 편집) == 기타 == 신탁으로 유명한 [[델포이 신탁|델포이 신전]]을 폐쇄한 인물이기도 하다. 델포이 신전의 예언자는 이때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선언했고, 델포이 신전이 다시 열리는 일은 없었다. 참고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은 것은 폐쇄 5년 후였으며, [[알라리크]]에 의해 로마 약탈이 일어난 것이 15년 후였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불태웠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이슬람의 칼리프 [[우마르]]도 유사한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누가 더 책임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테오도시우스가 파괴했다는 주장에선 이미 몰락할 때로 몰락하여 이집트 정벌군 사령관 아므르 이븐 알 아스와 그의 장교들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대해 아는 바 없었으며 심지에 그에 관련된 소문을 들은 적 조차 없었고 따라서 광신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4세기 말에 파괴했을거라고 본다. 우마르가 그랬다는 주장으로는 비록 그리스도교 시대에 쇠퇴하긴 했지만 이 도서관을 결국 불태워서 상당한 그리스 고전을 소실시킨 건, 642년에 알렉산드리아를 함락한 [[칼리프]] [[우마르]]였으며 초기 선출 칼리프 시대의 칼리프들은 대부분 호학에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진 뛰어난 지도자들이었지만, 우마르만은 예외였다고 주장한다. 사실 도서관은 한번에 드라마틱하게 파괴되었다기보단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파괴되었다고 보는 게 요즘 학계의 의견이다. 일단 도서관의 위치가 호수와 바다 사이에 있어서 끊임없이 관리해주지 않으면 습기 때문에 문서가 쉽게 상했다. 당시 소장했던 문서들은 대부분 화재나 습기에 취약한 파피루스였다. 또한 알렉산드리아는 동방의 최대 항구이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많은 정복자들의 1순위 공격목표가 되었던 곳이다. 확실한 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48년 카이사르의 알렉산드리아 공성전 때 화재에 불탄 적이 있고, 기원후 3세기 후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치세에 반란군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이후 서기 391년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테오필루스에 의해 폐쇄당하고 장서는 세라페움이라는 별관으로 옮겨졌으며 그 다음은 종교적인 이유로 테오필루스와 키릴루스 형제가 주교로 있던 385~420년 동안 부도서관이던 세라페움을 불경하다는 이유로 완전히 파괴했다. 642년 이슬람의 알렉산드리아 정복 이후 여러 이슬람 사료에서 도서관이 파괴되었단 내용이 나온다. 이슬람 장군 암르 이븐 알 아스가 642년 지하드를 진행하면서 도서관을 끝장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5세기 신학자 [[파울루스 오로시우스]]는 이전부터 도서관은 이미 파괴되고 있었다고 적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 중 의외로 체육 교과서에 등장한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은 후, 그리스 성소에서 열리던 올림픽이 이교도의 축제로 간주돼 폐지되었다는 내용.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